불쾌감부터 시작되는 창작자의 질문들
✦ 키워드 요약: AI 예술 논란, 지적재산권, 프롬프트 창작자, 이미지 대량생산, 예술의 진정성
출처: OpenPEN
예술인가, 모방인가 – AI 아트를 둘러싼 불편한 감정들
AI로 이미지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 있습니다.
“그게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
“작가들 그림 훔쳐다 조합한 거잖아.”
“누르면 나오는 이미지, 그게 창작이야?”
이 말들 속엔 단순한 의심 뿐만이 아니라 불쾌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쾌감은 단지 감정적인 반응이 아닌, 예술과 윤리, 창작과 기술의 경계를 묻는 신호입니다.
이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Prompt Engineer)’란,
AI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성할지 정교하게 지시하는 언어 설계자를 의미합니다.
단순한 명령을 넘어서, 카메라 시점, 조명 조건, 감정, 문화적 맥락까지 언어로 구성하는 이들은
이미지, 텍스트, 코드, 영상 등 다양한 생성 AI의 출력을 설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프롬프트는 버튼이 아니라 시나리오, 엔지니어는 사용자가 아니라 감정 디자이너에 가깝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비주얼 예술가가 아닙니다
저는 이미지에 전문성을 가진 예술가도 디자이너도 아닙니다. (제 홈페이지 디자인을 보시면 아시겠죠?)
전공은 인문학이고, 이 글은 AI 이미지 창작의 세계를 외부자의 시선, 특히 언어학을 전공한 사람의 시점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의 작업을 평가하거나 선을 긋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술과 감정,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접점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려는 하나의 기록입니다.
예술가의 권리, 침해당하고 있을까?
많은 AI 이미지 생성 모델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학습해 왔습니다.
작가의 동의 없이, 고지도 없이, 이름과 화풍마저 데이터에 태깅되었죠.
어떤 작가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AI 프롬프트에 “작가명 스타일”로 달려 있는 걸 보며
“내가 이렇게 무단으로 소비되는 존재였나”라는 모멸감마저 느낍니다.
이건 단순한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 개인의 정체성과 생계를 흔드는 위협입니다.
이미지의 대량 복제와 ‘천박한 느낌’
AI 이미지가 놀라울 정도로 고퀄리티라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반대로 가치를 의심하게 합니다.
•
버튼 하나만 누르면,
•
몇 줄의 문장만 입력하면,
•
그럴듯한 '작품'이 생성됩니다.
결과적으로 AI 이미지들은 “정서와 맥락이 생략된 표면적인 ‘예쁨’”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름답지만 공허하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 시리즈를 시작하는가?
저는 ‘AI가 예술을 위협한다’는 이야기보다,
다른 질문에 답하고 싶습니다.
AI 이미지 생성은 예술적 영역으로 발전 될 수 있을까?
그리고 AI에게 이미지 생성을 지시한 인간은 창작자로 불릴 수 있을까?
저를 포함한 모두는 무엇이 수준 높은 예술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주관적 ‘기준’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그 기준이 이겁니다 —어떤 문자들을 조합해서 이러한 이미지를 생성해 내었나, 그리고 그 문자들의 조합은 과거의 다른 조합들과 무엇이 다른가.
마치 책을 읽는 것과 같죠. 주제는 똑같고 전에 나온 이야기와 비슷비슷한데, 어? 뭔가 다른게 있네? 그리고 그 다른 점이 제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영향을 줄 정도라면… 그건 제게 의미가 있는 글이고, 예술(진실)입니다.
AI 이미지 생성에서 제가 주의깊게 보는 것은 “프롬프트(prompt)”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프롬프트는 단순한 명령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을 설계하고, 내러티브를 유도하고, 철학을 이미지로 번역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그 시도를 언어로 구현하는 사람이 바로 오늘날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들 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이제부터 시작할 [프롬프트 아트 탐구 시리즈]에서는
AI 이미지 생성의 가능성과 창작자의 역할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예시들과 함께 풀어갑니다.
다음 글에서는,
초기의 프롬프트가 어떤 구조였고,
그것이 어떻게 감정 설계의 언어로 진화해왔는지를 짚어봅니다.